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네 부모님들의 일생은 대부분 질곡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평생을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는 말이지요. 그리 많지 않은 땅을 일구면서 키우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우리 부모님의 삶도 버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고 가꾸면서 여섯 남매를 공부 시킨 것은 대단한 열정이었지요. 많지 않은 논밭을 팔아가면서까지 억척스럽게 공부를 시킨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제 정신이 아니라는 핀잔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공부 잘하면 자랑거리인데 부모님은 오히려 걱정거리였지요. 당시 아주 부자 집 말곤 중학교만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자식 때문에 남보다 더 고생을 하신 셈입니다. 어느 날 얼큰하게 술을 드시고 들어온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공부를 못하면 농사일이나 시키면 되는데 공부를 잘하니…”  그 말씀을 듣고 순간 울컥했습니다. 부모님에겐 공부를 잘하는 자식들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공부 못하는 게 효도였던 것입니다.

모두 공부를 잘하니 부모님이 먹을 것 입을 것 제대로 못하면서 눈물겨운 질곡의 삶을 살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여섯 남매가 공부를 못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요. 한편으론 이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데 자식 셋이 공무원이 되고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 예순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곤 하지요. 땅까지 팔아가며 여섯 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킨 눈물겨운 삶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당시엔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지요. 그리고는 어느 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며 보리쌀을 봉지에 담아 나가신 후 빈손으로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처지였다고 기억됩니다만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넉넉했던 것이지요. 어머니는 궁색한 처지에 다른 집 걱정하는 게 가당한 일이냐며 역정을 내시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집밖으로 슬그머니 사라지시곤 했지요.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동네사람들과 더없이 사이좋게 지내셨고 어머니와도 특별히 다투시는 것을 보지 못했지요. 어머니도 오직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참으로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더없이 부자였지요. 이제 좀 살만하고 모실만한데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나셨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늘나라엔 근심걱정 없다 들었지요. 그곳에서 세상사 모두 잊고 부디 넉넉하게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삶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삶의 교훈이자 덕목이 될 것입니다.

자식이 봉양하려 하지만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사는 것이 힘겨울 때면 부모님 묘소를 찾아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지요. 돌아가셨어도 부모님께서 도와주실 거라는 기대가 있고 어버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살아 백년 죽어 백년 한결같은 어버이지만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려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됩니다. 부모님을 잘 모시려 해도 세상에 안계시면 백번 천 번 소용없는 일이지요. 살아생전 하루하루 모두가 어버이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홍승표 사장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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