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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 철 교정기성 교수(경영학박사, 광주문화원 광주학연구소장)
정기성 교수 | 승인 2023.10.30 12:30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은 서울의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국민을 놓아두고 한강 다리를 폭파합니까?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며칠 전 어느 시민 강좌에서 들어온 질문이다. 이승만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대한제국 말기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을 때 청년 이승만은 《독립신문》과 《협성회회보》 주필, 독립협회 활동 등 계몽운동을 하였고,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됐다. 수감 시절 기독교로 개종하고, 옥중 계몽활동을 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사형 선고받았던 그는 감옥에서 도서 대출을 담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선교사가 그를 고종에게 특사 신청하여 미국으로 가게 한다.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5년에 걸쳐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드문 최고의 엘리트로 성장한다. 그는 평생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몸 바쳤다. 2차대전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뜨려 한국이 해방되자 나라를 세운 장본인이다.

위의 한강 다리 폭파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6.25는 뜻밖의 남침이었다. 그래서 한국군이 일요일 새벽 4시에 탱크를 몰고 남침한 북한군에 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3일 만에 탱크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는데, 소집한 병사들이 이것을 저지하느라 목숨을 걸었다. 육탄돌격대는 화염병에 불을 붙여 몸으로 던지는 전투였다. 실제 미아리 전투와 춘천 전투 상황은 이랬다. 

미아리까지 들어온 탱크는 6월 28일 서울로 진격해 왔고 서울을 접수하였다. 이 무렵 한강 다리는 폭파되었고 탱크를 한강 이남으로 몰고 내려오는데 시간을 벌었다. 역사는 이렇게 증언한다. 6월 28일 수원 비행장으로 맥아더 장군이 와서 한강을 시찰한다. 그곳을 지키던 병사를 보고 “어떻게 총 하나로 이곳을 지키냐?”라고 묻자 답한다. “죽음으로 사수 하렵니다.” 맥아더는 감동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병력을 급파한다. 스미스 부대이다. 그 후 유엔군이 참전하여 정전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오늘날에 보면 우리는 공산국가가 되었을 한반도인데 번영된 국가로 되었다.

즉, 한강 다리 폭파는 엄청난 속도로 진격하던 북한군을 3일간 막은 것이다. 이 3일이 훗날 한국전쟁이 패할 뻔한 것을, 그래서 김일성이 한반도 전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을 막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한강 다리의 폭파는 정당한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의 질문처럼 이승만은 다리를 폭파하여 많은 국민이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은 잘못된 지식이었다. 이렇게 역사를 잘못 인식시키는 한국 사회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장에 오도 되어 있는 것도 많다. 그야말로 “거꾸로 읽는 역사”가 많다. 당시 북한은 부교를 놓을 장비가 부족하여 탱크를 밀고 내려오지 못하였다. 소련제 T-34/85형 탱크 242대의 소련제 탱크가 밀고 내려오는데 공포의 전투였다. 부서진 철교를 간신히 수리해 탱크를 내려보내는 데 시간이 걸려 진격을 저지한다. 당시 전투로는 거의 일방적인 전쟁이었다.

당시 한강에는 다리가 4개였다. 광진교 한강교 철교 등이다. 6개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공산군은 나루에서 배로 한강을 건너기로 한다. 많은 배를 징발해 건넌다. 낮에는 배에 물을 담아 못 쓰는 것처럼 하여 비행기 폭격을 피하고 밤에 물을 퍼내고 밤새 배로 한강을 건넜다.

이승만은 유엔으로 가서 대한민국을 구해 달라고 연설한다. 그의 실력은 세계가 인정했다. 이러한 걸출한 인물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축복이다. 이것을 다시 비판하는 세대는 그의 실력이나 지도력을 보는 것이 아니고 그를 다만 어두운 한 정치가로 보려는 시각을 가진다.

7월 3일 북한군 전차는 철교를 수리하여 한강을 건넌다. 이때 남조선 공산당의 박헌영은 20만의 당원이 총궐기하여 남침한 공산군을 영접한다고 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남조선 빨지산은 49년경 거의 토벌 되어 가고 있었다. 지리산에 들어간 빨지산은 약 2 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박헌영은 남에 있는 지지 세력들이 총궐기하여 남한은 자연히 무너진다고 보았다. 김일성은 49년 벌써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고 일방적 남침을 실행한다. 미군이 예상보다 빨리 참전하였고, 대한민국은 살아남게 된다. 아! 대한민국, 미군과 유엔군이 구한 국가이다. 

정기성 교수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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