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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독립운동가 이종훈과 후손(2)정기성 교수(광주문화원 광주학연구소장)
정기성 교수 | 승인 2023.03.07 18:09

The New York Times
Published : March 13, 1919 , Copyright @ The New York Times

SEOUL, March 12. (Associated Press)
  The declaration of Korea’s Independence says that it represents the voice of 20,000,000 persons, speaking in the name of justice and humanity. 
  “We are no mean people,” the declaration continues, “We have forty-three centuries of history as a distinct self-governing nation. It is our solemn duty to secure the right of free and perpetual development of our own national character, adapting ourselves to the principles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The declaration continues that it is the duty of Koreans to obtain their independence, to wipe out injustice, get rid of our present sufferings and “stir up the national spirit and vitality, so suppressed by the unjust regime and of Japan, and leave our children eternal freedom instead of bitter and shameful inheritance. We shall fight to the last drop of blood in the great cause of liberty.
  It is asserted that there is no intention on the part of the Koreans to avenge themselves against Japan, that their only desire is the right the wrongs done not by the Japanese nation but by the few of her statemen, led by the old aggressive policy.

서울, 3월 12일 (AP)
  한국의 독립선언은 2천만의 목소리를 정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외친 것이다. 
“우리는 보통의 민족이 아니다.” 독립선언서는 계속된다. “우리는 4천 3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분명한 자주 국가이다. 자유권과 우리 자신의 국가 발전을 확보하기 위한 확고한 의무가 있다. 우리는 세계 재건 원리에 따라 우리 국가를 재건할 것이다.”
  이 선언서는 한국 사람이 일본이라는 부당한 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해 온 그들의 독립을 쟁취하고 불의를 제거하고 국가의 정신과 활력을 진작시켜 현재의 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유산을 남겨놓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위대한 자유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라도 싸울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한국민들이 일본에 대항하여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염원은 일본에 의한 것이 아니고 몇몇 일본의 정치가에 의해 행해진 구태의 낡은 침략적 정책에서 비롯된 그릇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 

3.1.절이 지나갔다. 독립만세 운동은 멀리 미국 뉴욕타임즈에도 기사가 실렸는데 위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광주의 독립운동가 이종훈의 집안은 3대에 걸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맏아들 이관영(李寬永, 李東洙, 李商洙라고도 부름, 1883-1908)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손병희의 첫째 사위인데 어린이 운동과 어린이날 제정으로 유명한 소파 방정환이 손병희의 셋째 사위이니, 방정환의 큰 동서가 된다.

이관영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유학 선배인 권동진, 오세창 등과 만난다. 1905년 일본 유학중 경술국치 소식에 의분하여 귀국한 후 이완용의 암살 기도와 이완용의 집에 방화를 주도하였다.(한국사, 너른고을 광주:역사와 인물, 웃담문화교육연구회 : 박연희, 윤재훈, 이주연, 임종분, 조수아, 하영호, 허미경, ㈜우리글, 2022, p. 204) 일본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양평으로 피신하여 의병대장이 되었으며, 양평 용문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항전하다가 1908년 25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이종훈은 아들의 죽음으로 독립운동의 의지를 더욱 키웠을 것이다.

이종훈의 손자 이태훈은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보성전문학교 학생으로 19세였다. 그는 독립선언서 준비작업 과정에서 연락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이모부인 방정환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여 경성 시내에 배포하였다. 이후 40여 년간 언론인으로 지내면서 국민에게 민족의식을 고양 시키는데 헌신 하였다.(앞의 책 p. 205) 

정기성 교수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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