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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비대면정기성 교수(경영학박사)
정기성 교수 | 승인 2020.12.11 10:3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숙명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머리로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력을 얻는다. 깊은 산중이나 망망한 절해고도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인간은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사람 간 거리 두기를 만들게 하더니, 결국 <집콕>으로 인간을 다스리게 되었다. 인간은 말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소통한다. 인간의 말은 그 자체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우위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입을 열어야 한다.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침이 튄다. 그러나 튀겨지는 침방울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마스크를 하게 되었다. 마스크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걸러 낸다는 것인데,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막고 나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막는다는 것을 믿어야 할 따름이다.

인간의 입을 막으니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세상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인간들은 각종 말 속에서 산다. 여북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을까? 말씀, 즉 말이 있어 우리는 즐겁다. 재잘재잘 소통하고 부드럽게 사랑을 표현하고 소리 질러 분노를 표출한다. 말은 언어(言語)로 바뀌어 글로 표출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글자를 해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글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사람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말을 잘 알아듣는 훈련만 되어도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글귀를 잘 알아보는 사람과 글귀를 소통하지 못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있다.

대면하면 말을 잘 알아 들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고 표정을 살피고, 회의장에서, 교실에서, 교회에서, 시장에서, 결혼식장에서, 장례식장에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우리는 편하게 입을 벌리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비대면이라는 허울로 대면의 소통을 줄여버렸다. 대면과 집합의 광장을 없애 버렸다. 비대면은 전자적 수단으로 대체 되었다. 줌이라는 앱을 사용해서 국제회의를 해야 하고, 심지어는 랜선 위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서로 비대면 하면서도 대면과 똑같을 효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들과 카톡의 페이스톡을 하는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장소에 구분 없이 온라인만 되면 페이스톡으로 상대방을 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하면 대면·비대면의 구분을 없애면서 지낼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는 글로 표현된다. 글은 복잡한 사항을 정리하여야 글이 된다. 복잡한 인간의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정리하여 표현하면 훨씬 명확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된다. 더구나 짧은 글로 간단히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말과 글 수단이 좋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인물 훤하고 지식 능력이 있는 사람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한다. 신언서판을 갖춘 사람은 대면·비대면에서 높은 점수를 딴다. 이것은 거의 진리이다. 그래서 자녀를 신언서판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교육한다.

이 대면·비대면 시대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마스크를 더욱 좋아한다. 인간의 입을 막았기에 코로나19를 이용하여 마음대로 인간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어쩌면 입을 막아 버린 독재의 상황이다. 입을 지퍼로 막아 버리면 인간은 동물과 다름이 없다. 대면·비대면이든 당당히 말을 소리질러야 한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면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민주주의는 언로(言路)에서 자란다.

다시 한번 명심해 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표현은 우리가 말씀과 함께 살아온 것을 나타낸 것이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옳은 말을 할 수 있어야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되는 것이다. 노력해 보자. 대면·비대면(對面·非對面) 시대에도 옳은 말을 옳게 하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정기성 교수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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