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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우리 전투정기성 교수(경영학박사)
정기성 교수 | 승인 2020.11.09 08:38

지난 10월 23 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군의 6·25 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 지원군의 항미원조 작전 70주년을 기념하면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의 승리는 중화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고 인류 평화, 발전, 진보의 역사에도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축사하였다. 여기에는 시 주석을 포함해 중국 지도부 전원이 대회에 참석했다. 국가 연주 및 제창 이후 참석자 전원은 전쟁에서 숨진 장병을 묵념했다. 그만큼 중국은 한국전에 참전하여 미국과 전쟁한 것에 무게를 두는 형국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 "인류 평화, 발전, 진보의 역사에도 영원히 기록", "한반도 정세 안정시키고 세계 평화 지켰다", "미군을 패배시켜 미군 불패의 신화를 깼다", "中인민, 문제 일으키지 않지만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는 등으로 신문은 요약하고 있다.

중국은 6·25전쟁에 참전해 한국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1950년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지정하고 당일이나 직전에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는다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을 뜻한다.

이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고, 참혹한 전투는 장진호 전투(長津湖戰鬪)였다. 장진 저수지에서 벌어진 한국 전쟁의 결정적 전투 중 하나로 미군 해병대와 중국군이 벌인 전투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은 이 전투의 지명을 장진이 아닌 "초신"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자어인 長津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Battle of CHOSIN은 미국 몬타나대학교의 맨스필드센터 연구소가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1950년 11월 27일, 중국 제9병단은 장진호 지역에서 에드워드 알몬드가 이끄는 미국 제10군단을 기습 공격했다. 혹독한 겨울에 잔혹한 17일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들은 곧 포위되었고, 마오쩌둥의 유엔군 격파 지시를 받은 쑹스룬이 이끄는 약 120,000명의 중공군이 이들을 공격했다. 유엔군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철수를 위해 싸움을 이어나갔으며 중공군의 사상자를 늘려가며 포위를 돌파했다. 제10군단의 흥남 철수 작전이 유엔군의 북한 철수의 마지막 단계였다. 이곳에 겨울의 추위가 닥쳐오는 상황에서 중공군들과 싸움은 동사, 아사, 그리고 두려움과 싸움이었다.

장진호는 한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인공저수지이다. 전투의 주요 전장은 흥남과 장진호를 잇는 126km 길이의 골짜기이다. 만주를 향한 미군은 개마고원 외길의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전투하게 되었다. 통로로 갈 수 있는 길목이 하갈우리이다. 중공군이 맨몸으로 공격하자 미군들은 철수하기 시작하는데, 많은 물자가 얼어서 전투할 수 없었다. 하갈우리를 지나야 흥남 항구로 가는데 그야말로 지옥의 추위가 찾아왔다.

전투는 한국 전쟁의 가장 혹독한 겨울 날씨 상황에서 벌어졌다. 도로는 가파른 경사와 골짜기로 이루어졌으며 일차 선 외길이었다. 1950년 11월 14일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한랭전선이 장진호 전체를 뒤덮었고, 이에 따라 기온이 영하 37도까지 내려갔다. 추운 날씨 때문에 지프와 라디오를 이용하는 전지들은 온도가 낮아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총기의 윤활유는 젤리처럼 변했고 전투에서 총을 쓰는 것도 어려웠다. 격발 핀의 용수철도 총탄을 원활하게 발사하지 못했다. 그냥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 전투가 하갈우리 전투이다. 하갈우리 전투는 미군들에게 끔찍한 손실을 가져왔다. 중공군은 자고 나면 시체가 얼려있었다. 이런 가운데 육탄공격하는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죽음의 계곡으로 조금씩 후퇴하고 있었다. 모든 장비를 버리고, 살아 돌아가는 것이 최고의 승리였다. 눈보라와 악천후 속에서 11월 28일부터 시작된 하갈우리 전투에서 양측은 미군 전사상자 315명, 중공군 전사상자 8,500여 명 가량 손실이 났다. 미군은 흥남으로 철수하였고, 패배하였다. 이렇게 한국전은 참혹하게 진행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참혹한 광경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중국은 1950년 11월 그 추운 겨울, 한반도를 넘어와 한국 전쟁에 참여하였고, 아직 종전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북한은 아직도 자기들이 한반도를 공산화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갈우리 전투에 관하여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북한과 중국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있다.

정기성 교수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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