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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옵티콘(Panopticon)( I )정기성 교수(경영학박사)
정기성 교수 | 승인 2018.09.17 15:10

모처럼 우연히 주말 오후 골든벨을 시청하게 되었다. 1위의 학생이 대답을 잘해 골든벨 직전의 49번 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 학생은 원형 교도소로 보이지 않은 교도관이 수인들을 감시하는 감옥 구조를 물으며 “사회를 감시하는 어떤 구조”를 묻는 질문에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제안했던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답변을 해서 맞추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중간에 탈락한 학생은 교도관이 되겠다는 꿈을 칠판에 써 놓았다. 왜냐고 아나운서가 물으니 아버지가 교도관이라고 한다. 그러면 교도소에 자주 갔냐고 물으니 어려서부터 갔고 그곳에서 교육도 받고 하던 사람들을 보았으며 아버지처럼 봉사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직업을 존경하는 학생의 이야기와 마음이 기특했다.

1위의 학생은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였다. “변호인”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자신이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하였다. 청소년 시절의 꿈은 미래인재들의 바탕이 된다. 청년들이 훌륭한 꿈을 가지면 그 사회에는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되 그것이 사회에 소금과 빛이 되는 역할을 꿈꾸면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도소를 두 번 갔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모두 놀란다. 그런데 아주 잠시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가지 않은 곳, 그곳이 교도소이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마음 깊숙이 넣어 놓고 잘 얘기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골든벨 프로그램을 보면서 얘기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중학교 때다. 중학교 시절 소년원을 갔었다. “무슨 연유로 어디로 갔나요?” 당시 소년원은 서울 불광동에 있었다. 지금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자리일 것이다. 내가 다니던 분원중학교를 세우시고 분원교회를 목회하셨던 김덕화 목사님이 계셨다. 이 목사님은 법학을 전공하였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어느 때 분원을 떠나 소년원 원목으로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어찌어찌하여 서울에 와 불광동 소년원에 갔다. 내가 찾아 간줄 모르시다가 조금 늦게 오셔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무실로 나를 안내하셔서 이것저것 얘기하는 중인데 저쪽에서 아이들이 얻어맞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딱딱... 아쿠쿠구..아쿠구구..” 참으로 처절한 소리들 이었다. 목사님은 어린 나를 배려 하셔서 사무실 문을 닫았지만 당시 건물이 허술한 때라 그 매 맞는 소리만 들어도 그곳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목사님은 나를 자택으로 데리고 가셔서 사모님에게 밥을 지으라고 하시어 따듯한 밥을 지어 주셨다. 그날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소년원 방문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 — 이러한 세계가 있구나.”

목사님을 그 후 한동안 못 뵈었다. 물론 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생활도 힘들어 연락이 끊겼었다. 그런데 대학 때 방학을 맞아 양주 회천 율정리 늘푸른 중학교(지역중학교)로 유네스코 지원을 받아 대학신문사 기자 동료들을 데리고 봉사활동을 갔다.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오신 교장선생님이 뜻밖에도 김덕화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은 덕정교회를 담임하고 계셨다. 10여리 길을 매일 자전거로 오셔서 격려 해주셨다. 그래서 다음 방학 때 한 번 더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그 후 목사님은 서울 광화문 종교교회소속으로 일본 오카야마로 선교사로 떠나셨다. 이 후 고베로 가셨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내가 강릉대학교 교수가 되고 경영정책과학대학원장이 되어 최고 경영자 과정을 인솔해 오사카로 갔을 때 잠시 시간을 내어 고베를 방문하였다. 이때 고베(神戶)에 교회를 신축하시고 지역 교회를 담당하시며 선교활동을 하고 계셨다. 그때 나는 기쁘게 두 가지를 보고 하였다. “목사님, 제가 교수가 되어 국립강릉대학교 대학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장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말씀 하셨다. “정군이 장로가 된 것이 더 기쁘다.”

그 때에도 소년원에서 만났던 목사님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부족했던 내가 사회에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이렇게 키워주신 은사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덕화 목사님은 중학교에서 웨슬리 성경공과공부를 하게 하셨고, 수업과 만남의 과정에서 큰 영향을 주셨다. 교도소, 소년교도소를 떠올릴 때면 “나는 소년 교도소를 갔다 왔어요.”라는 생각으로 나를 회상한다.(II로 연결)

정기성 교수  webmaster@tg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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